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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공감

손톱 깎이

손톱을 깎는 도구인 손톱깎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톱깎는 행위를 말하는 손톱 깎이다. 손톱 깎이가 띄어쓰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그리 중요한건 아니다.

 얼마전에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손톱을 깎았다. 중학생때부터 불과 몇주전까지 10년이 훌쩍넘은 시간동안 나에게 손톱깎이는 손톱과 발톱을 깎는 도구가 아니라 발톱만을 깎는 도구였을 뿐이었다. 손톱깎이가 발톱만을 깎는 절반의 역할을 하는동안 음식물을 잘게 씹어주는 치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오랜시간만에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은건 나 스스로가 아니였다. 십수년만에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나의 손톱이 손톱깎이에 의해 딸깍딸깍 깎여졌다. 다른 사람의 손톱을 깎는다는것이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닐수도 있을진대 아플까봐 조심스레 나의 손톱을 깎는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 이후 나는 나의 손으로 손톱깎이를 이용해 한 두차례의 거사(?)를 더 치루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에 온 이후 어제 처음으로 손톱을 깎았는데, 남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 나에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수 없다. 손등이 위로 향하게도 해보고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도 해봐도 불편하긴 매 한가지다. 어렵게 혼자서 손톱을 깎고 나니 나름 뿌듯해진다. 이거 뭐.. 초딩도 아니고 이런것에 뿌듯해 하다니...

 그런데 오늘 출근 후 일을 하면서 내가 손톱을 잘못 깎았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일이 자동차 유리를 수건으로 닦는 일인데, 그동안 아프지 않았던 손끝이 아리는 것이었다. 손톱을 너무 짧게 자른 것이었다. 손끝의 고통을 느끼니 아플세라 조심스럽게 손톱을 깎아주던 그때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짧게 자르냐는 나의 물음에  아프다며 손톱을 약간 남겨놓으며 깎아주던 모습...이렇게 아파보니 그때의 그 행위가 결코 작지 않은 배려였음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 손톱을 제대로 깎는 법도 모르는 어린아이다. 짧게 깎아진 손톱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알게해준다.  손톱이 짧게 잘려진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