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목요일, 고신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있었습니다. 시국선언문에는 고신대학생들 120이 서명했고 시국선언 당시에는 3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박근혜는 하야하라'며 외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의 제제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있는 학생들의 외침은 학교 정문에 울려펴졌습니다.




이번엔 재학생들의 용기에 감동한 선배들주도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습니다. 고신대학생들의 시국선언 이틀 후, 고신대학교신학과&고려신학대학원 재학생/졸업생들의 시국선언문이 공개되었는데요, 30명이 함께 동참했습니다. '저항정신'은 고신의 정체성입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고신의 선배들이 일제에 저항했던 역사를 고신교단의 구성원들은 자랑스러워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신내의 시국선언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그리고 고신의 구성원들은 이렇게 행동하는데 '고신교단'은 언제까지 침묵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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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생선생님의 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어요'에서 하느님과 예수님은 이 사회의 최하층민들과 함께 산다. 이산가족, 고아들이 그들이며 하느님과 예수님은 가진것 없고 힘없는 자들로 그려진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동화가 하느님과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고 한다. 

 

 맘몬을 섬기는 한국교회의 눈으로 이 동화를 바라보면 신성모독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이 동화를 읽으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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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리본'은 세월호 사건이후 비통함에 빠진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프로필사진을 이 '노란리본'으로 바꾸어 세월호사건으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 

 노란리본이 사람들의 프로필사진에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납득하기 힘든내용의 카카오톡이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돌고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러한 내용의 카톡을 그 내용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받은것이 아닌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하... 이 얼마나 기가차고 어이없는 내용이란 말인가... 기독교인들의 상상력이 이런데서 이렇게 발현되다니... 놀라울 다름이다. 


이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강정마을을 방문한뒤 교회내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교회내에서 목소리를 높이니 "해군기지건설로 파괴된 구럼비 바위는 굿판을 벌렸던 곳이니 우리가 그들을 위해줄 필요 없는거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던 한 성도의 말이 생각난다. 


저 내용의 카톡이 신학대졸업생들이 모인 카톡방에도 내용이 올라와서 많은 사람들이 부랴부랴 카톡의 프로필사진을 바꿨다고 한다. 저 내용자체도 어이없는데, 신학대를 다녔다는 사람들이 저정도의 분별력도 없이 어떤 유언비어에 동조되어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다니... 한국기독교가 많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한 단면이라 생각한다. 


저 글이 올라온 후 누군가가 저 내용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 전체가 우울한건 사실이지만 이런식으로 일어서는건 좀 아니다. 


주술 이전에 하나님께서 노란색과 나비를 선하게 창조했다. 그래서 나는 노란 리본을  실컷 쓰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 이 얘기를 듣고, "아, 그렇군요. 내가 주술사 노릇을 하고 있었군요. 즉시 그만 둬야겠어요." 이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의미부여를 비웃을 것이다. 


주술적 의미의 나비는, 선하게 창조된 나비를 왜곡해서 의미부여를 한 것 뿐이다. 

그런데 이제 평화와 희망을 상징한다 하니, 좋지 아니한가~ 이게 주술이면 평화와 순결의 상징 비둘기도 귀신이겠다. 


지금의 노란리본은 비통함에 빠져 있자는게 아니라 희망을 얘기하자는 거다. 

아직 배가 바다 안에 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과, 때마침 드러난 부당한 권력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또한 사고부터 구조, 수색작업을 하는 동안 드러난 언론사들의 오도에 관한 국민들의 의심과 공권력의 부당함을 이대로 묻어두는게 아니라 이 시간을 적극적으로 견뎌내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 


다만 내가 정말 싫은건, 이런 상황에서

'노란 나비는 저승에 가는 영혼이다.', '사탄의 계략에서 벗어나서 즉시 회개해야한다.'는 등의 글을 비그리스도인들이 보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굳이 안들어도 될 개독교라는 소리를 자처해서 듣게 만드는 이따위 글을 쓰고 퍼뜨리는 사람을 만난다면 땡꼬 한방 먹이고 "그럼 태진아 형님이 부른 노란 손수건은 뭐냐"고 묻고싶다.


하나님 믿는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여~~ 제발 하나님이 주신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현상을 바라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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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주 일요일, 그리고 저번주 일요일은 교회건물도 없이 교회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교회를 갔다. 사실 이번주 부터는 교회를 정착하기로 했는데 지난주에 나를 인도한 한 교회성도가 교회 모임장소를 잘못 알아서 예배순서 말미에 모임장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예배에 참석해보고 싶은 마음에 한번 더 그곳을 방문했다.


몇몇의 가족단위로 모여 교회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로써, 제도권의 기성교회와는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바른 교회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교회였다.


첫째, 교회건물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교회예배모임을 주로 가지는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빌려서 쓰는 곳이었다. 저번주에는 목사님집에서 모여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인도한 분때문에 잘못 찾아갔다. 토요일부터 1박으로 삶터를 벗어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둘로 나누어서 각기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성도들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교회 건물 중심의 기성교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점이다.


둘째, 예배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지 않다.

 일단 설교를 찬양인도를 하는 사람은 물론 그 곳에 앉아있는 사람모두 편안한 일상복장으로 예배에 임하고, 인도자가 높은 강대상에서 회중을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눈높이에서 순서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순서진행자와 회중들과의 소통도 잘되었고 순서를 담당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두가 예배의 참여자로써 임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로인해 모임에 대한 부담감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그렇다고 예배가 가볍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교인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졌고, 목사님의 설교역시 바른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느껴졌다. 


셋째, 모든 세대가 함께 하는 모임

 따로 분리된 어린이(또는 청소년, 청년)모임이 있지 않았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예배를 하는데,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 가운데에서도  어린이 시간을 따로 만들어 어린이들을 배려하고 있었으며 어린이들도 역시 헌금 봉사등의 예배의 순서를 맡아서 모든 세대가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 가운데에서 세대간의 갈등이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넷째, 일상생활에 있는 강조점

 '선데이크리스찬'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날인 일요일만을 소중히 여기는 사고 가운데에서 우리는 이원론의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그날에 모인 사람들과의 기쁨 넘치는 시간도 있었지만 강조점은 다른데 있었다. 바로 그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다. 일상생활을 강조하는 예배 가운데에서 예배만을 거룩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일상 가운데서의 삶은 속된 것이라는 이원론이 극복되어져 갈 수 있다.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백화점식의 소비지향적인 한국교회의 모습에 반감을 가지고 새로운 대안적인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희망하고자 하는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부디 그러한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교회로써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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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교회공감 2013. 3. 11. 18:56

하나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고급레스토랑에서 가족들과 함께 최고급 스테이크를 썰며 맛있게 먹고 있으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식사하고 있는 바로 옆에서 며칠을 굶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한 아이가 힘에 겨워 누워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목사가 이야기 한다"여러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끼니를 굶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이러한 걱정은 하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써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많은 성도들이 "아멘~!!"으로 목사의 우렁찬 목소리에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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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이야기는 지난달 표창원교수의 부산대 강연때 도입부에 한 말을 내가 편집한 것이고(정확한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두 번째 이야기는 비교를 통해서 행복함을 찾는 교회 성도들을 풍자하기 위해서 내가 지어낸 이야기로써 한 목사의 설교 내용의 한 부분이다.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직도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짧은 이야기 둘 다 그 속에서 어떠한 행동의 모습은 발견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을 인지하며며 느끼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첫번째 이야기의 레스토랑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불편함을 느끼지만 두 번째 이야기의 목사와 교인들은 행복함을 느낀다.


 당신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가? 내가 맛있는 밥을 먹고 있으면서도 옆에 누워있는 가난한 아이의 모습에 불편해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나보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모자란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가? 


 많은 교회가 우리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바라보면서 비교를 통해 우리 안의 행복을 찾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교회는 그러한 이웃들의 모습들 가운데에서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식으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을 찾는 교회의 모습은 이 사회속에 있는 교회위에 먹구름을 더욱 더 만들어낼 뿐이다.


교회는 정의로워야 한다. 왜나하면 교회가 신을 정의로은 존재로써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혹은 소홀히 다뤘던 한국교회는 정의의 문제에 더욱 깊은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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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주 토요일, 다음날이 교회가는 날인데도 밤이 될때까지 출석할 교회를 정하지 못했던 나는 규모가 작은 교회임에도  교회성도들의 대부분이 청년들이며, 청년들 위주로 교회를 운영한다는 지인이 다니는 한 교회가 생각이나 지인과 연락을 해서 그 곳에서 예배를 보기로 마음 먹었다. 


 지인의 안내에 따라 교회에 들어섰는데, 번지르르한 교회건물을 가진 여느 교회와 달리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교회었다. 작은규모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인지 방석을 깔고 앉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 공간에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소그룹모임까지 이루어졌다.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함께 모여 한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찬양을 드리고, 많은 교제와 풍성한 나눔이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자신들이 먼저 섬기려고 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더군다나 내가 작년까지 다닌 교회는 교회의 식단이 많이 부실해서 일요일 점심은 거의 굶다시피 했었는데, 이 곳은 점심식사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학사를 운영하여 학교가 집에서 원거리에 있거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 한가지 인상깊었던 점이 예배시간 전에는 창문에 탈착용 방음장치를 설치해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함으로써 교회주변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놓은 점이었다.

 지인은 그 날 무슨 시험을 치는 날이라고 했는데, 리더(?)로 설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시험을 친다고 하였다.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휴학도 하는 사람도 있고....비교적 짧은 시간(개척한지 10년)만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고 숫적으로 성장한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들었는데, 이러한 체계 잡힌 모습을 보면서 의문점이 어느 정도 풀렸다. 나는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기도, 예배, 말씀으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이 이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하는 것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교인들간의 풍성한 나눔, 무언가 느껴지는 찬양시간, 모임 이후의 축구시합, 성도들의 자발적인 봉사등 이 곳에 있으면서 좋은 시간을 많이 가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불편한 마음도 많이 있었다. 

 

 오전예배 시간에 '거룩함'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음란물을 보는 사람이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인 죄인으로 규정짓는 듯한 말을 많이 하시는 것이었다. 음란물이야 그것이 가지는 중독성이나 왜곡된 성의식의 고착화등 부작용에 대해서 많이 공감하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 가운데에서도 이해하며 납득할 수 있었지만 음주에 대해서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음주를 금기시하는 교회의 분위기는 또래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순모임 시간에까지 계속 되었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한 잔, 한 모금의 술이라도 처음부터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그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고 특히나 이번 교회는 보수적인 색채를 가진 교회이기 때문에 이해는 가긴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무조건 죄인취급하고 그러한 행위를 무조건적으로 죄로 규정짓는 것은... 기독교세계관으로 바라보아도, 상식적으로 바라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근데 나도 몇년전까지는 이러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기독교인이었으니 머라 할 말은 없지만....ㅎㅎㅎ 나는 금주를 하던 나에게 한 번 묻고 싶다. "네가 술을 거부함으로써 얻은 것이 무엇이 있니?"라고... 과거의 나는 이 세상속에서의 '거룩함','구별됨'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오늘날의 교회와 개개인의 신앙인들에게 똑같이 던지고 싶다. 과거의 나와 똑같은 대답을 하겠지..."우리는 무조건 금주함으로써 세상속에서 거룩해야 되고 구별되어야 됩니다~~!!!"라고.....

 

 예배를 다 마친 뒤 축구를 하러 가는 차안에서 교인들과 보낸 시간은 너무나도 불편한 마음에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동성애자들을 더럽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 얕은 성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부풀려진(자신이 부풀렸든, 부풀려진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든)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와 그들이 알고있는 잘못된 내용이 내가 그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을 너무나도 불편하게 했다. 불편함 가운데에서 차안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데 전도사라고 하시는 분이 마지막에 나를 그로기상태로 몰아넣었다. "홍석천은 그냥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고백하고 죽어버려야 해" 너무나도 불편해서 그냥 내려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옆에 앉은 지인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목회자를 꿈꾼다는 사람이..기독교교리에 의하면 그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일 터인데, 한 사람에 대해서 죽어야 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다니..... 도무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후에도 나를 불편하게 하는 대화는 계속 되었다. 지나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저기는 나이든 사람들만 많으니 성장학적으로 죽은 교회"라는둥....진짜 죽빵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후에 판자촌에 혼자사는 고등학생에게 교회에서 숙식이 제공되게 하기 위해서 힘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이미 나의 눈에는 '저놈은 나쁜놈'이라는 안경이 씌여진 뒤였다.


 이 교회는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열심히 섬기는 모습, 새로온 사람에 대한 관심표현, 열정과 기쁨이 있어 보이는 교회 분위기등이 나의 호감을 사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날 하루 만큼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불편함을 느꼈던 하루였다. 

 한편으론 교회나 기독교인이 건강한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느꼈던 하루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Posted by 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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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같았던 2013년도 어느새 2월 후반으로 치닫고 있다. 년초에 세운 마음가짐이 흐트러질 시점인 것 같다. 12일만의 포스팅은 이런 나의 정신을 대변해주는 듯하다.ㅠㅠ 쨉실하게(?) 이번 포스팅은 사실 하나로 할 수도 있는 건데 두 개로 나눠서 하고자 한다. 정신상태가 흐트러지면 머리회전은 빨라지는 모양이다. 


 이번에 찾아간 교회는 대구에 있는 교회로써 이전 교회에서 몇년전에 사역하시던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이다. 적절하게도 학교 동기인 동생의 결혼 장소와 목사님이 같은 도시에 계셔서 노마드가 되고나서 가장 원거리에 있는 곳에서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목사님께 설명해 주시길 기존의 교회와는 달리 카페를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곳이며, 주로 의과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곳이라고 해서 가기 전부터 어떤 형태의 공간에서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지 궁금했다. 예배시간도 12시로써 늦잠을 푹~~~ 자도 예배에 지각 안 할 수 있는 시간에 예배를 드리며 주일 예배를 제외한 주중의 어떠한 공적인 모임도 없다고 한다. 여러모로 기성교회와는 다른 교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회가 속한 교단은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는 교단 소속의 교회였다.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건물 5층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엘레베이터를 내리자 말자 입구가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이 교회를 찾아왔다가 잘못 찾아 온 줄 알고 발걸음을 돌릴지도???



여느 카페처럼 이렇게 음료를 만드는 공간이 있다. 




주중에는 좌석과 테이블 배치가 일반 카페와 같이 되어 있지만 주일예배시에  예배를 드리게끔 좌석세팅을 한다. 



흔들의자도 있다~!



뒤쪽으로 돌아가니 이렇게 스터디룸도 있어 시내에서 공부나 회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렴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공간의 형태나 사용용도가 어딘가 느껴 본듯하다... 바로 지난해 두 번 가보았던 나꼼수의 김용민교수가 개척한 벙커원 교회이다. 포스팅을 하며 생각해보니 지리적 위치도 각각 서울과 대구의 변화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유사하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원교회의 창립예배 모습

  (출처: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161)


 내가 이 곳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은 공간활용을 잘 한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의 공간으로만 교회당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모로 크나큰 공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이 곳의 공간은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있는 사회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맞닿아 있다. 교회를 교인들의 공간으로만 사용하고, 필요 이상으로  건물 그자체에 집착하는 많은 교회들은 분명히 반성해야 될 부분이다. 


 예배의 공간이 주는 신선함과는 달리 주일예배의 형식은 여느 교회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독문을 읽고 모든 성도가 일어서는 순서가 많았고 설교의 강조점등을 생각해볼때 오히려 기존의 교회보다 보수적인 면들도 많아 보였다. 설교는 강해형식으로 하시는데, 아마도 다른 모임이 없기에 성경을 교인들이 함께 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강해식의 설교를 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다.


이 교회의 성도들은 근처에 있는 대학의 의과대 학생들이 많고 목사님 두 분도 의대에서 사역을 하시고 계신다. 그래서 오후에는 병원에서 예배도 드리고 예배마치고 식탁의 교제를 나눈 후에는 성도들과 의료봉사도 나가고 있다. 주중의 공식적인 교회의 모임이 없는 점과 공간을 카페로 활용하는 점과 더불어서 이러한 교회의 사역의 모습들은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이 사회속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 치는 일환으로 보여 큰 감명을 받았다.


 한 가지 아쉽게 느껴졌던 점은 나(새로운 사람)에 대한 배려부족이다. 목사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었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비록 내가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내가 쉽사리 대화에 참여하기 힘들었다. 


 설교를 통해 말씀하신 목사님의 말씀대로 기독교의 복음으로 가장한 성장주의, 물질주의, 자본주의 따라가는 이 땅의 수많은 교회와 달리 예수님의 모습에 제대로 반응하고 실천하여 교회가 하는 일이 이 사회속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그런 참된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Posted by 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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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부산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민중교회를 방문했다. 처음엔 민중교회란 것을 모르고 찾아 갔지만 담임목사님과 이야기하는 중에 이런 교회를 사람들은 '민중교회'란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교회로비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시사IN'이라는 진보성향의 잡지이다. 그 외에도 녹색연합, 주간경향등 을 포함한 잡지들과 그러한 성향의 서적들이 비치되어 있었기에 이 곳이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교회들과는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굳이 성향으로 비교하자면 주일에 벙커원에서 공동체모임을 가지는 벙커원교회 정도가 비슷한 것 같다. 


 늦잠을 자버려서 예배시간이 10분정도 지난 시점에서 예배에 참석했는데,  20명 남짓되는 성도들이 듬성듬성 앉아 조용한 분위기에서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고 있었다. 

 예배의 형식은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았지만, 인상깊게 느낀 것이 목사님이 설교중에 실명을 이야기하며 정치인들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인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십수년동안 다니던 이전 교회에서는 한번도 들어볼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예배가 끝난 뒤 목사님과 성도들과 식탁위의 교제를 나누었는데, 식사의 퀄리티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다니던 모교회에서는 주일에 절대 맛볼 수 없는 맛있는 점심이었다.(교회 식단에 항명하는 의미로 컵라면을 사들고 와서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다;;;)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것이 식탁위의 교제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식사를 함께 나누며 성도가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 알 수 있다. 물론 식단의 질이 본질은 아니며 전부가 아닐수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풍성한 교제를 가능케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적은 교인수, 성도들이 번갈아 가면서 다른 성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방법이 이러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성도가 늘어나면 교회에서는 이러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힘들어 지는 것 같다.


 식사를 하면서 주로 담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24년전에 공단지역에서 교회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위해서 여러가지 좋은 일들을 해오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이 교회를 '민중교회'란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교회는 교인들에게 회참여를 많이 강조하고 있으며 헌금이 모아 강정마을, 한진등 투쟁의 현장을 지원하고 있고, 상담소를 만들어 이를 통해서도 노동자들과 노숙자들을 섬긱고 있다고 한다.


 오고가는 대화중에 내가 제일 기억에 남은 말은 "대형교회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민중을 위한 교회를 지향하다 보니까 작은교회가 되더라"라는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스스로에게, 한국교회에 "성도수를 늘리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Posted by 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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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을 맞이한 이후 (한살이 먹었다는게 실감이 안 나노;;;) 3번째 주일에 찾아갖 교회는 옆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미자립교회였다. 무조건 작은 교회를 가자는 생각을 하고 처음엔 집근처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아가려고 했으나 그새 교회가 사라져 버려 한참을 걸은 후에 내가 이번주에 가기로 마음먹은 조건에 부합한 교회를 찾을 수 있었다.

 

교회는 보통 11시에 오전예배를 시작하는데, 교회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 시간은 이미 1115분정도 되어 있었기에 이미 예배가 시작중이었다. 찬송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문을 여니 몇평 남짓한 공간에 4명의 성도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4명중의 1명은 순수한 교회성도였고, 담임목사님의 자녀 둘과 사모님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내가 정한 조건에 부합한 교회였던 것이다.

예배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약간 눈치를 본 후 나는 자리에 앉았고, 예배의 분위기 자체 보다는 목사님의 설교에 맞추어 예배를 드렸다(교만한 자의 모습이여ㅠㅠ) 목사님은 진화론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인간에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이 있다고 하시고, 세상에 속해 있는 자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는 등 대단히 근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계시는 듯했다. 이러한 근본주의적인 내용의 설교 때문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목사님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들어 예배를 드리는 내내 많이  많이 불편했다.

 

예배를 마친 후 강단에서 내려온 목사님을 본 후 조금은 놀랐다. 한쪽발을 제대로 못 쓰시는 장애인이셨던 것이다. 그렇게 눈에 띄는 장애를 가진 목회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놀랐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배 후에 목사님 가족들과 나눈 식탁위의 교제는 나에게 행복함을 안겨 주었다.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들과 많은 모임들 때문에 주일 점심시간에 성도들간의 제대로된 식탁의 교제를 나누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담임목사와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다는 것이 대형화되고 구조화된 교회에서는 더욱더 힘든 일이다. "신자들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수 많은 일들과 많은 직분들, 양적으로 팽창한 교회의 구조가 과연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들인가?"라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시간이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누었던 만찬, 식탁의 교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초대교회의 모습 등을 묘사 되는데 , "성경도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분들과 여러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아까 내가 예배중에 가졌던 목사님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적생각이 어느정도는 나의 미성숙함에 기인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근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분은 꽤 많이(어쩌면 나보다 더)열린 생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근본적주의적인 성향은 재차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나는 교회내에서 신학적 논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과, 사대강 사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치참여 강조,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 대통령 당선자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 이근안을 안수한 교단의 과오에 대한 지적, 김태촌을 칭송하는 신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보수적인 자신이 속한 교단과 교파내에서 목소리 높여 주장할때 다른 목사들로부터 받은 소외감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보다 깨어있고 보수적인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분처럼 느껴졌다.

 

이 교회의 성도수가 이렇게 가족들 포함해서 5~6명으로 줄어든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해주셨는데, 성도들간의 다툼으로 인해서 성도들을 목사님 스스로 내보냈다고 하셨다. 성도들을 내쳤다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돈으로 보는 상업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졌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담임 목회자는 성도수에 많이 연연해 한다. 그러기에 그런 목회자들 같았으면 교회내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쉬쉬하고 넘어가 성도수를 유지하는데 혈안이 될 것이다. 나에게 자신의 교회에 계속적으로 출석하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 부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다른 교회와 달리 출석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주일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나는 성도에게 출석을 강요하는 교회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목회자들이 설교만 잘하면 장땡이다. 그런데 '잘하는 설교'란 것이 정말 웃기다. 신앙생활만 잘하면 하나님이 복을 준다, 기도많이 하면 물질을 채워준다, 앞길이 형통하다, 세상은 무조건 악하기 때문에 교회활동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전도를 무조건 많이 해야 한다등등.... 종교의 본질에 반하는 내용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은 설교가 되는 아이러니한 집단이 교회가 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사실 어제 예배를 드린 교회에서 부정적인 것들도 많이 느꼈었다. 하지만 포스팅이 긍정적인 면을 많이 드러내는 쪽으로 흘러간 것 같다. 이는 번영신학을 진리로 여기는 대다수의 한국교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나의 심리가 이번 포스팅에 반영된 듯하다

Posted by 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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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보수적인 교단의 교회를 십수년째 다니고 있으며, 또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신학생이다. 나의 신분을 망각한채 조금은 발칙한(?)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는데, 2013년이 시작하자마자 안식처와 같았던 모교회를 떠나서 노마드신자가 되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심정을 함께 느끼고 싶었고, 애환을 느껴 그들을 공감해 주고 싶었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한발짝 나아가고 싶었다.  


 현재 구독하고 있는 기독교잡지인 '복음과 상황'지난해 12월호의 커버스토리로 노마드신자에 대한 주제가 실렸고,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출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복음과 상황의 내용이 노마드신자 일기를 포스팅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말로써, 노마드 신자는 기독교신앙은 가지고 있으나 제도권교회에 대한 반감 또는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서 특히나 근래 들어 더욱 많이 생겨나게 된 사람들이다.

 

 노마드신자가 된 첫날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었고, 미사때 느낀바를 개신교 예배와의 차이와 함께 포스팅 하려고 했으나 2주가 지나버린 지금 그때의 감동이 사라져버린 관계로ㅠㅠ 혹시나 다음에 미사를 드릴 기회가 생기면 포스팅을 올리도록 하겠다. 



Posted by 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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