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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떠난이에 대한 기록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나의 미필적고의

 미필적고의: 행위자 범죄 사실 발생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행위 어떤 범죄 결과 발생 가능성 있음 알면서도 행위 하는 의식 

 

 오늘 포스팅의 제목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나의 미필적고의'라고 적었다... 이유는 이렇게 될것이란 것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는데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최근의 사건들에서부터 과거로 점점 시간을 거슬러가면서 하나하나씩 적어보도록 하는게 좋겠다.

 

첫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그러니까 16일 오후, 할머니와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으니 네가 가서 확인해봐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머니의 전화를 안 받아서 다대포고모집에 있는 동생이 가보려했다. 나는 그날 하려고했던 계획이 있었다 '이이제이'팟캐스트 공개방송과 라멘먹으러 가기로 한 약속이 그것이다. 아버지한테 가보는것이 내키지 않았으나 멀리 다대포에 있는 동생이 가본다고 하는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동생보고 오지말라고 하고 내가 가보았다. 내키지 않는 마음을 끝까지 품으며 말이다.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다, 또 두드렸다. 몇 수십번 두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그러냐? 거 참 짜증나게 하네, 그만 좀 해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잠에 취한듯 들리기도 했고 술취한듯 하기도 했다. 분명한건 나에게 짜증을 냈었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후자의 경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술을 마셔서 술에 취해있다" 그렇게 단정지었다. 조건반사인가? 나는 당연히 다른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돌아섰다... 어쩌면 그때부터 죽어가고 있었던 아버지를 놔둔채 말이다.... 잠에 취한것도, 술에 취한것도 아니었을 수 있는,,,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 그런 아버지를,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은채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제대로 사고했더라면 아버지가 협심증 때문에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심하게 아프신 후 퇴원하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 아버지는 오직 술주정뱅이였다.

 

둘째, 아버지와 내가 각자 집을 나온지 석달정도 지났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적어도 나랑 같이 살기를 원하셨는데, 할머니도 세식구가 살면 어떻냐고 하셨는데... 나는 왜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을가? 병약한 아버지를 놔두고 말이다.......

 

셋째, 집을 나가시기 전, 이혼을 하시기전, 아버지가 나에게 요청했다. 엄마에게 헤어지지 말자고 말해달라는 요청, 그리고 덧붙이신 이야기 "이 애비가 살아도 얼마나 더 살겠노?" 나의 대답은 NO였다.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 그 얘기를 절대 꺼내지 않았다. 네 식구가 한 지붕 밑에서 계속 같이 살았더라면 아버지가 혼자서 그렇게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넷째, 이혼하겠다는 마음을 엄마가 굳혔을 때, 한창 뜨거운 여름이던 8월초, 아버지를 모시고 알콜중독상담센터에 갔다. 상담은 그때 그 한번으로 었다. 아버지는 상담센터 상담선생님이랑 싸우려 들었고, 우리도 거들어 아버지에게 짜증을 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이 일때문에 아버지와 다툰적이 있다. 아버지가 한번 상담 받았을 뿐인데 상담하시는 분께서 심각하지 않다고 아버지 당신께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난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로 단정지었다 그 뒤로 아버지와의 대화는 더욱 끊겼다.

 

다섯째, 그때... 어쩌면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낼 마지막 기회였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내가봐도 아버지는 중증 알코올중독을 가지고 있었다. 이혼 이야기가 오고갈 즈음 아버지를 치료시킬 기회였는데.. 돈 아까웠다. 솔직히 말해서 그랬다. 아버지에게 무엇을 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상담센터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병원비... 형과 내가 반반씩 보태면 됐는데.... 돈을 쓰기가 그렇게 아까웠다.

 

그 이전의 이야기들..........

 나는 아버지를 멸시하고 멀리하고 무시했고 의도적으로 피했다. 언제부터일까... 내가 기억이 없을때부터 아버지와 관계가 서먹서먹했었던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모습에 반감이 너무나도 커져서 서먹서먹한것이 미움으로 바뀌었던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나약한 아버지를 그렇게나 무시했을까? 자존심 세고, 정의감 불타는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때도 나는 짜증과 함께 돈을 건냈다. 아버지가 술이 거하게 취했을땐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도 했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반인륜적이었다. 나의 모든 생각과 언행, 모든 것이 아버지를 아버지되게하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대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수도 있다. 나는 정말 나쁜놈이다. 용서받지 못할만큼....

 

 내일은 아버지에 대한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 하나씩 기록해보자. 좋았던 기억, 안좋았던 기억 번갈아가면서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