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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떠난이에 대한 기록

기억들....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좋은 기억이 많을까 나쁜기억이 많을까... 좋은기억 하나, 나쁜기억 하나씩 더듬어 가보자


첫번째 좋은기억, 가루가 되어 유골함에 담긴 아버지... 따뜻했다.

첫번째 나쁜기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를 만져보았다,, 차가웠다. 나는 아버지를 한번도 안아보거나 손잡아 드린적이 없었다


두번째 좋은기억, 아버지 장례식장에서는 가족들간에 싸움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화합하는 모양새다

두번째 나쁜기억, 아버지의 죽음이 할머니를 더욱 미워하게 만들었다.


세번째 좋은기억, 차에 두고내린 나의 카메라, 잃어버릴까 아버지가 걱정하고 집에 보관해주셨다.

세번째 나쁜기억, 이혼을 눈앞에 두고, 알코올 상담센터를 모시고간 두 아들에게 짜증스런 모습만 보였다. 그러면서 이혼을 막아달라는 의존적인 모습을,,,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네번째 좋은기억, 이혼을 앞둔 시점, 부자지간에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네번째 나쁜기억, 이혼을 앞두고서도 술을 마셨다.. 술없이는 못살았다.


다섯번째 좋은기억, 아버지가 그날도 술을 마셔서 엄마랑 다투었다. 영광도서 근처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집앞 평상에서 아버지랑 이야기를 했다. 정말 얼마만이었는지...

다섯번째 나쁜기억, 그날 대화의 끝은 아버지의 짜증과 나의 분노로 끝이났다.


여섯번째 좋은기억, 대리운전 기사인 아버지의 일터인 영광도서 근처로 아버지를 따라갔다. 아버지의 뒷모습, 집에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상을 찍어서 뭐하게?"라며 물었다. 아버지의 일상을 찍은 사진들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사진수업 과제로 제출했다. 그 과목의 성적은 A+이었다.

여섯번째 나쁜기억, 만들어진 동영상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아버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일곱번째 좋은기억, 아버지가 '한국야당사'책을 보라며 주셨다. 재밌었다. 나도 아버지에게 유시민의 사인을 받은 '한국현대사'책을 선물해드렸다. 아버지는 이혼하고 이사 가면서 단 몇권의 책만을 가져가셨는데 그 중에 내가 선물해드린 책이 있었다

일곱번째 나쁜기억, 부자지간에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그 뒤로 없었다.


여덟번째 좋은기억, 강정마을에 다녀온 나... 아버지에게 사진을 보여드렸다. 정부의 폭력에 함께 분노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조선일보 신문을 보시면 "이것도 신문이가? " 라면서 화를 내며 내던저버리셨다... 확실히 나와 닮았다.

여덟번째 나쁜기억, 아버지는 맨날 했던 이야기만 하신다, 이변호사, 김영삼 욕, 정당가입한 일, 초등학생때 선생님이 당신에게 분필을 주며 사회시간은 당신더러 수업해라고 했던일... 주위 사람에게 그런 말만 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아홉번째 좋은기억, 아버지가 협심증으로 병원에 하루종일 검사받을때 같이 있어주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좋았따

아홉번째 나쁜기억, 내가 배가 너무 아팠을때 아버지는 그때도 술에 취해 있었다. 나 혼자 새벽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열번째 좋은기억, 다리 깁스를 해서 복학했을때, 아버지는 매일같이 학교에 나를 데려다 주셨다.

열번째 나쁜기억, 내가 대학가겠다고 말했을때, 아버지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대학을 가냐며 짜증만 내셨다. 아버지는 나의 학비를 보태준적이 한번도 없었다.


열한번째 좋은기억, 20살, 내가 백수 건달일때 힘든 집안사정에 아버지가 용돈을 주셨다. 나리 컴퓨터 고쳐주라고 부품 살 돈과 함께..

열한번째 나쁜기억, "나리가 그렇게 부끄럽더나?"라며 전화로 나를 그렇게 쏘아붙였다. 아마 나에게 가장 크게 화를 냈던적이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날, 나는 집을 나가서 2주동안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ENG 노가다도 그만두고 나의 1년간의 백수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열두번째 좋은기억, 기계공고 입학했을때, 좋아하셨던 아버지..

열두번째 나쁜기억, 아버지는 입학식, 졸업식때는 맨날 오고싶어하셨다. 나는 왠지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게 싫었다.


열세번째 좋은기억, 아버지, 형, 나리랑 태종대에 놀러갔던 기억... 나리가 그때 사진을 자기책상위에 놔두고 있던데... 아직도 있으려나? 재욱이, 나리랑 같이 연극보러 갔는데 연극이 하지 않아서 그 앞에서 눈가지고 놀던때도 기억난다

열세번째 나쁜기억, 없다


열네번째 좋은기억, 아버지의 사진기, 초등학생때 까지만해도 그 사진기를 들고 놀러가서 사진도 찍고 했었다. 덕분에 많은 추억들을 지금 볼 수 있다.아버지의 사진기는 지금 내 책상에 놓여져있다. 내가 가진 물건들 중에 가장 애착이 많이 남는것 중에 하나가 아버지의 사진기다

열네번째 나쁜기억, 커다란 아버지가 들고온사진기, 보이스카웃 모임인가..?? 그때 사진기를 들고오셨다. 보이스카웃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행님 아버지 사진기사가? 좋겠네?" 나는 아버지가 그러는 것이 싫었다. 아버지는 왜 유별나게 그랬을까? 중학생 이후?? 부터는 아버지가 사진기를 들고다니는건 구경하기 힘들었다. 내가 그때 아버지를 부끄러워해서 내 마음을 읽었을까?


열다섯번째 좋은기억, 아버지랑 형이랑 찰흙놀이를 했다. 코끼리를 만드는데, 형이 찰흙을 많이 가져가서 나는 삐쳤다. 아버지는 적은 양의 찰흙을 가지고 멋진 코끼리를 만들어 주셨다.

열다섯번째 나쁜기억, 아버지.... 아버지가 기장식당에서 식칼을 들고 올라와서 고모부를 찌를려고 했다... 할머니와 고모는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나는 그것을 바로앞에서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열다섯번째 좋은기억, 엄마가 서울로 간뒤, 아버지와 함께 서울 외할머니댁에 갔다. 엄마 아빠 나 형 함께 있었던 마지막 기억이었던것 같다. 그 뒤 엄마는 아버지의 장례식때 찾아오셨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사람에 대한 분노도 누구러드는 모양이다.

열다섯번째 나쁜기억, 그뒤로 어머니와 어버지는 영원히 헤어지셨다. 하지만 우리가 어머니와 만나는걸 불허하진 않았다


열여섯번째 좋은기억, 아버지 회사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놀러갔다. 나는 차안에서 형이랑 같이 뛰면서 요요~요요~ 하면서 손가락을 하늘로 찔러댔다. 아버지는 당신이 운전하던 버스에 나를 태워주기도 했다.

열여섯번째 나쁜기억, 없다... 그 이상 기억을 더듬을수록 아버지에 대한 나쁜기억들은 없다...


좋은기억들, 아버지가 새벽에 버스일 하러가시면서 맨날 들르든 국밥집을 가르쳐주셨다, 아버지와 금강공원에 종종 놀러갔다. 개업한 온천장 칼국수집에서 공짜로 칼국수먹었던 기억, 고모가족들이랑 놀러갔다가 갈비집에 갔던 기억도 있다. 용두산 공원에서 새엄마를 만났떤 기억, 족발 먹었던 기억, 그때 형과 나가 지쳐 쭈그려 앉아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걱정을 해주었고 새엄마는 "우리 아이들인데 왜 그러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책을 많이 사주셨다, 당신도 책을 많이 읽으셨다.


나쁜기억들, 역시 술에 대한 기억들이 많다;;, 술을 먹으면 밤새도록 한돌 참돌 나리야 하신다. 전두환 박정희 개새끼라고도 한다. 박사님 박사님~! 이라고도 하신다.


아버지에게 묻고싶은 이야기, 궁금했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금은 다시 돌아오실 수 없는 곳에 가 계신다.

▲아버지, 형, 나. 계곡에서.. 어떤 계곡인지는 모른다. 이때 그린 그림을 미술숙제로 제출했다. 최소한 이때까지 아버지의 눈빛은 굉장히 또렸했다.




다음번에는 아버지가 왜 이렇게 술에 중독되어 사셨는지, 왜 두번의 이혼을 겪으셨는지에 대해서 기억을 더음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