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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6.부산***대 그다음 나의 직장은 시민단체다 내가 부여받은 직책은 '미디어간사' 현장에서 촬영도하고 편집도하고 홈페이지 관리도 하고, 소식지도 발행을 하며 대학생들과 시민기자단을 운영을 했다 시민기자단들과의 결과물은 많지는 않았지만 대학생들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함께 있는 간사님들과의 호흡도 너무 좋았고, 추억이 너무나도 많다. 가장 재미있었던 곳이다. 돈은 제일 적었지만... 술.... 진짜 많이 마셨지? ㅋㅋㅋㅋ 더보기
5. 디**팩 그다음 나의 일터는 옥외광고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이었다. 약 1년반 정도를 했다. 고등학교 선배를 따라 일했다. 참 재밌게도 일했고 힘들게도 일했고 많이도 일했도 배우기도 많이 했다. 하하하 현수막배달도 하고, 간판도 달고, 현수막 및 PVC출력도 했다. 장애가 있는 친구와의 케미도 좋았다. 그곳에 있으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컴퓨터그래픽스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하하하 초량 골방은 키포인트였다. 낭만!! 더보기
총선결과를 보고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우리 아버지... "3당합당? 그런게 말이 없는 일이 어딨노? 그길로 이 애비가 민주당에 가서 입당서 썼다"아버지가 살아생전 가장 많이 했던 말씀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나의 아버지는 정의롭게 사는걸 가장 큰 가치로 여겼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부산지역에서 야당이 5석이나 넘게 가져갔다. 전국적으로도 '새누리당의 참패'라고 말하여질 정도로 민주당과 여당이 많은 의석수를 차지했다. 수많은 선거에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면서 이랬던 적이 없었을 터인데, 항상 지는 선거만을 봐었을 터인데, 아버지가 이번 선거에서도 당신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였다면 이 결과에 얼마나 많이 좋아하셨을까? 더보기
[노동자일기] 4. 사장은 3만원이 아깝고 노동자는 3만원이 아쉽다 3개월간의 수습기간이 근무조건에 있었다. 물론 구두였다. 손으로 적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알아서 챙겨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냥 있기로 했다. 알아서 챙겨주겠지... ㅎㅎㅎ 내가 일을 한지 3개월이 지난 어느 시점에 사장이 나를 호출했다. 이건 수습기간 이후의 연봉협상을 위한 호출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다. "윤기사, 내가 너를 지켜보니까 일은 보통으로 하는데 성실하고, 오래 같이 일하고 싶다" '일은 보통으로 하는데'라는 말이 심하게 걸렸지만 그래도 성실하다는 말에, 오래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에 여기서 일하면 굶어죽지 않겠다는 어떤 소박한 믿음이 생겼다. "원래 3개월지나면 월급을 제대로 주기로 했는데 월급을 이 시점에서 올려줄게""얼마나?""원래 얼마라고 보고 왔어?""연봉 2200.. 더보기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그랬던 걸까? 오늘 좋은 사람들과 만났다. 나 포함해서 3명, 이야기 하다보니 3명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다. 나까지 총 세명이었는데 셋 중이 두명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셋 모두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형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가시기 마지막 그 전에 아버지에게 못했던게 생각이 많이 남는다더라. 나 역시 그렇다. 다른 동생 한 명은 "아버지가 나를 생각했던 부분이 많았다는걸 알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슬퍼하지 않을거 같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아버지 살아계실때 그런 마음이 있었다. 이 세상의 아버지는 다 그런 것일까? 안 그런 아버지들이, 그리고 그 자식들이 부럽다. 더보기
[노동자일기] 3. 사장의 인격 확인 사건 여기서 10년 가까이 일하신 김과장님, 김과장님은 이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신다. 아침에 항상 제일 일찍 오셔서 퇴근때는 문단속까지 하시고 다닌다. 일하면서 지각하는 것을 본적이 한번도 없으며 자신의 일을 아랫사람인 나한테 미루는 법도 없다. '저런 직원을 둔 사장은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그런데 김과장님의 모습중에 한가지 맘에 안드는 점이 있다. 사장 험담을 많이 하는 것이다.(물론 나중에 나도 함께 동참했다) 나도 사장이 그렇게 맘에 들었던건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욕을 얻어먹을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닌것 같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을 욕하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왜 유독 사장 욕을 그렇게 하루에 한두바가지씩 할까? 그러다가 사장의 인격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어느날 일어났다. .. 더보기
술로 점철된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좋아하시는 정도를 넘어선 거의 중독수준이었다. 아니, 중독이었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술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셨을까? 어쩌다가 술버릇이 그렇게 고약하게 되었을까? 정확한 통계를 낼수아 없겠지만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아버지는 술에 취해있었던 것같다. 어릴때도 그랬고, 아버지가 혼자 나가서 사시기 전에도 그랬다. 그냥 취하면 좋다. 취하는 정도를 너무나도 넘어서니 그것이 문제였다. 밤새도록 쉴새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나 밤새도록 질러댈까? 두 종류로 범주화 하면 첫째는, 좆같은 대한민국. 둘째는 좆같은 '느그오래비' "전두환 개새끼, 박정희 개새끼""느그오래비는 박사님 아이가? 박사님! 박사님!"('느그오래비'는 어머니의 오빠를 이야기 한다. 아버지.. 더보기
[노동자일기] 2. 내가 이곳에 온 이유 졸업논문까지 마쳤고... 이제 졸업만 앞두고 있다. 근 10년 만의 졸업이다. 2006학번으로 남들보다 2년 늦게 입학하고, 휴학도 5년이나 했으니...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늦은 나이에 졸업이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하는 그런 고민... 나라고 예외일까? 나는 금수저가 아니지 않는가? 모두가 다하는 고민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취업'에 대한 압박감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다.남들보다 10년이나 늦었지 않은가? 이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것보다 무서운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기독교교육'을 전공했다.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굴르다보니 기독교교육 학사모를 쓰는 사태까지 와버렸다. 맙소사다. 많은 숫자의 졸업 동기들이(나보다 다 어린 친구들이다) '기독교라인'을 타서 신학대학원을 가거나 관련.. 더보기
[노동자일기] 1. 공감능력 0%의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것이란... "근로기준법 19조 2항,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손해배상청구해도 됩니까?""뭐에 손해배상청구하노? 뭐... 뭐땜에 뭐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노?"근로기준법을 읊으며 최사장을 윽박지르며 압박도 해보았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 사람, 분명히 두가지 중에 하나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모자라거나 똑똑하거나. 지적수준이 그렇다는 얘기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공감능력 0%의 사람인 것이다. '공감능력 부족한 모지래이', '공감능력 부족한 똑똑이'.... 이런 사람이랑 더이상 무슨 말을 한다는 말인가? 울분을 참지못해 사장의 면전에다 외치며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노동부 직원 오면 노동부 직원이랑 이야기 하십시오" 최사장이 뒤에서 .. 더보기
영원이 그리울 것인가? 이틀전, 그러니까 지난주 토요일 아버지의 49제를 마쳤다. 49제를 끝냈다는 의미는 종교적으로는 고인을 완전히 떠나보낸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보다, 아버지가 육신밖에 남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때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때보다 슬픔이 훨씬 적다. 별 감흥이 거의 없다. 시간이 흘러서 그랬던걸까? 아니면 나 스스로 '49제'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채 49제를 하기를 간절히 원하신 할머니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어쨌든 아버지의 49제를 마쳤다. 이제 내가 해야할건 무엇일까? 마지막 49제를 할때는 별 감흥이 없지만, 문득문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건 막을 수없다. 오히려 '49제'라는 종교적의식을 통해 아버지를 훨~훨~ 날려보내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