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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떠난이에 대한 기록

술로 점철된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좋아하시는 정도를 넘어선 거의 중독수준이었다. 아니, 중독이었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술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셨을까? 어쩌다가 술버릇이 그렇게 고약하게 되었을까?


 정확한 통계를 낼수아 없겠지만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아버지는 술에 취해있었던 것같다. 어릴때도 그랬고, 아버지가 혼자 나가서 사시기 전에도 그랬다. 그냥 취하면 좋다. 취하는 정도를 너무나도 넘어서니 그것이 문제였다. 밤새도록 쉴새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나 밤새도록 질러댈까? 두 종류로 범주화 하면 첫째는, 좆같은 대한민국. 둘째는 좆같은 '느그오래비'


"전두환 개새끼, 박정희 개새끼"

"느그오래비는 박사님 아이가? 박사님! 박사님!"('느그오래비'는 어머니의 오빠를 이야기 한다. 아버지 아내의 오빠.)


 아버지는 정의감이 넘쳤고 의협심이 많았다. 아버지의 책꽂이에는 '노동'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꽂혀있었다. '남루한 모습의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빡쳐서 엠뷸런스 운전 일을 그만두게 된 무용담은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중의 하나다. 많이 했던 이야기중에 김영삼의 3당합당에 열받아서 민주당에 입당하게 된 이야기도 있다. 긍정적으로 아버지의 입에 오르내린 인물 두 사람은 이홍록과 노무현이다. 두사람 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이 정도면 아버지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이 거지 같은 세상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렇게도 술을 마신것이다.

 

 이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느그오래비는 박사님 아이가?'라는 주사에 대한 해답을 내려야 한다. 아버지는 중졸이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당신께 직접 들어본적이 없지만 사후에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되었다. 더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재수, 삼수하다가 당신의 아들에게 중졸의 학력을 남기게 되셨다고 하더라.

 

"초등학생때 선생님이 사회시간이면 분필을 주며 '경조 니가 수업해라'라고 했다"라는 이야기는 아버지 스스로 자신이 배움에 대한 한이 맺혔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가정(부모님)에게 얻은 상처는 이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어린시절에 할머니와 물리적으로 멀리떨어져 있어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부재를 겪은 기간이 길었다. 또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항상 싸우셨다.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틈만나면 할아버지를 헐뜯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형제간에 그렇게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원래 정의감에 넘치고 여리고 의협심이 많았던 기질과 가정과 이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무력감 때문에 너무나도 고독했던 아버지가 우연히 술과 만나고, 가장 가까운 것이 술이 되지는 않았을까?

 

 술을 마시게 된 때부터 아버지 인생의 무한궤도는 작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회와 가족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술로 달래고 술로 인해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받은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또 상처를 주고.. 끊을 수 없는 술의 무한궤도가....